@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 (Irvine)
2008년 12월 29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불합리한 홈스테이 배정 - 홈스테이 신청 양식에 중요하게 여기는 우선순위를 기록하게 되어있었고, 면허가 없는 나는 '학교와의 거리'를 1순위로 꼽았건만, 학교와 굉장히 먼 곳에 배정되었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총 1시간을 가야하는 곳이였는데, 각각의 버스가 1시간 단위로 있었기 때문에 갈아타면서 한 대를 놓치면 2시간도 걸릴 수 있는 곳이였다.
거리가 너무 멀다, 다시 배정해달라고 했더니, sure, 돈을 다시 지불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지불해야되는 돈은 20퍼센트, 30퍼센트도 아닌 100 퍼센트!!!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미국의 자본주의에 화들짝 놀랐지만, 어차피 말이 안 통하겠거니 싶어 일단 도착해서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배정 받은 집으로 갔다.
알고보니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홈스테이를 배정하고 관리하는 당사자였다. 조용하고 말 잘듣는 동양인을 선호하여 본인 집으로 배정한 것.
집에는 10살, 13살이였던 새침한 두 딸, 가정에 헌신적인 아저씨, 일본인 여자아이, 독일인 여자 아이, 이렇게 살고 있었다.
목수였던(것으로 기억되는) 아저씨는 집을 구경시켜주며 방과 방을 잇는 기차 레일을 직접 만들었다며 자랑하셨다. 마당에는 바베큐 시설도 직접 제작 중에 있었다.
홈스테이 음식들 - 아침에 일어나서 부엌에 내려가면 아저씨가 신문을 가져다 주고, 아저씨가 커피를 내려주고 아저씨가 팬케익과 베이컨 또는, 토스트와 소세지 등도 구워주었다. 아주머니는 본인이 일을 하니까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아저씨 혼자 다 하심ㅎㅎ
지금보니 아저씨 팬케익 굽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다. 덕분에 푸짐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은 정해진 시간 내에 먹어야 했고 부엌에 3~4가지 음식이 차려놓고 부페식으로 가져다가 먹는 식이였다. 브로콜리 & 소세지가 들어간 치즈마카로니, 감자, 토마토 & 양파 위에 커다란 소세지가 얹어진 요리 등 처음에는 새롭고 푸짐하고 맛있어 보였는데 어느새 점점 한인 슈퍼에 가서 나만의 음식을 사는 일이 잦아졌다.
아주머니는 집에 없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 해 먹으라며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보여주셨다. 대부분 렌즈에 돌려먹는 인스탄트 음식들이었지만, 처음 한 달 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재미는 있었다.
Saddle Back 교회 방문 - 가족들은 별장 여행이나 해변 피크닉에 같이 가자고 몇 번 청하였는데, 학교 일정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동네에 유명한 교회가 있다고 하여 처음으로 따라가보았다.
엄청 커다란 교회였다. 유아, 초등, 고등, 성인 별로 건물도 따로 있고, 카페, 농구코트, 콘서트장도 있다. 전체 교인이 55,000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오바마 취임식 축복 기도를 한 릭 워렌 목사가 이 곳 목사였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오바마 취임식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주었다. 영상이 끝나며 그 분이 등장하니 사람들은 환호를 하며 감격해하였다. 취임식 기도문의 문장을 하나하나 다시 읊으며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쳤다.
조용하고 한적한 얼바인 -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4위라고 하였던가- 연중 따듯한 날씨 덕에 거닐기 좋은 얼바인 거리를 산책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마주치면 처음보는 사람이라도 함박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한 시간 단위로 있었던 버스를 놓치면 다음 정거장까지 걸어가곤 했었다. 지금생각하면, 그렇게 버스를 놓치고 망연자실한 척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조용하고 따듯한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밖의 기억들 - 수업 중에 Culture share라고 하여 각 나라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먹는 시간이 있었다. 한인 슈퍼에서 호떨 믹스를 사서 홈스테이 집에서 만들었더니 둘째 딸이 옆에서 시식해보고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며 좋아했다 ㅎㅎ 이후, 세상에서 젤 맛있는 음식 먹고 싶다고 조르면 따로 사와서 해줘야 했다.
둘째 딸 생일 때 두 부부는 일주일이 넘게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동네 곳곳에 쪽지를 숨겨 보물찾기 놀이도 하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게끔 하기도 하였다. 다음에 나도 해봐야지 했다는. ㅎㅎ
두 달 후 결국 다른 집을 찾아 나갔다. 애초에 배정에 불만이 있었기에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연고없이 찾아가 자리를 잡기에 홈스테이만한 것도 없는 것 같긴하다. 언젠가 시스템이 더 좋아지면, 호텔이나 호스텔을 찾을 때처럼 거리, 가격 등의 옵션을 더 편하게 보고 선택할 수 있겠지- 이미 5년이나 되었으니 머라도 달라졌겠지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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