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를 보고 찾아간 것은 아니였는데, 으깬 아보카도#avocadosmash를 바싹 구운 빵에 얹은 아침을 받아 자리에 앉아놓고 보니 내가 딱 원하던 이상적인 가게를 찾아온 기분이다.
엘 아테네오 서점(Editorial El Ateneo Grupo Ilhsa)
산 니콜라스(San Nicolás) 거리를 지나 방문한 엘 아테네오 서점은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아름다운 서점으로 유명하다.
혼자 하는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별 것 없는 포인트에서 내가 원하는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 극장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전부이고, 해석하기 힘든 외국어로 된 책의 표지를 괜히 들춰보는 것 외에 할 것이 없는 서점은, 누군가에는 실망스럽고 심심할 수도 있다. (나중에 다른 일행과 같이 갔을 때 반응이 그랬다...!)
나도 꼭 가야한다고 추천할만큼 감명 받은 것은 아니였지만, 모든 서점이 주는 조용하고 차분해지는 느낌, 모르는 언어로 쓰여진 책들의 낯설음, 이국적인 느낌이 좋았다. 한국어 사전을 찾고 반가워하고, 어린이 섹션에서 동화책을 한참 구경하며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포르투의 렐루 서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 서점에 이어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검색해보았다.
1.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 Selexyz, 2.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El Ateneo, 3. 포르투갈 포르투 - Livraria Lello, 4. 미국 LA - Secret Headquarters comic bookstore, 5. 영국 Glasgow - Borders, 6. 영국 Peak District - Scarthin, 7. 벨기에 브뤼셀 - Posada, 8. 멕시카 Mexico - El Péndulo, 9. 일본 교토 - Keibunsya, 10. 영국 런던 - Hatchards, 가본 곳은 오직 두 곳
Delicious Café
Laprida 2015, C1126 CABA, Argentina
서점을 나와 다시 거리를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서 낮맥을 했다. 여행 중 가장 꿀같은 시간...♡
구글의 Timeline을 이용하여 이 날의 행적을 더듬는데, Barrio Norte를 지나간 흔적이 있다.
Barrio Norte는 스페인어로 북쪽 지구인데, 국립미술관을 찾으러 가는 길이였던 것 같다.
(Barrio Norte is the informal name given to a part of Buenos Aires centering on Santa Fe Avenue and the Recoleta district. Barrio (도시의) 구(區), 지구, 지역, Norte 북쪽)
이 날은 주말이여서 그런지 잔디밭에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하늘과 햇살이 너무 예쁘고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평화롭고 행복해보였다.
한 쪽에서는 대학생들이 전공 서적 같이 두꺼운 책을 가지고 나와서 공부를 하는 등, 혼자 또는 두 명 정도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한 쪽에서는 flea market이 열리는 복작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 단위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전날 스테이크 하우스를 예약해두었기에 숙소 근처로 돌아가야했다.
우버를 타고 가는 길 위에서 신호등 때문에 멈춘 차 앞을 가로막고 급히 악기를 연주하는 예술가를 보았다. 아무도 그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마음은 아팠지만, 재미난 구경이였다.
Don Julio Parrilla
Guatemala 4699, C1425 CABA, Argentina
이 곳에서는 재미난 만남이 있었다.
예약 시간에 맞춰 길을 찾아가는데, 가게 앞에서 어떤 한국인이 소리 높여 나를 불렀다.
오픈 시간에 맞추어 줄을 서있다가, 같은 한국인인 것 같아서 일행인척하고 같이 들어가자며 호의를 베푼것이다.
사실은 전 날 이미 예약을 해서 오픈 시간에 맞추어 바로 들어갈 수 있다며, 오히려 내 쪽에서 그 쪽을 포함하여 같이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겠다고 하였더니
'내가 호의를 베풀려고 했는데!!!'하며 아쉬워한다.
알고보니 엄청 웃기고 재미있는 친구였고 - 이후에도 꽤 많은 일정을 같이 한 후, 한국에와서도 만났다 ㅋㅋㅋ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이 후에 다른 곳에서 먹은 어느 스테이크보다 맛있었다. 다만, 비싸다ㅋ
Bar Sur
Estados Unidos 299, C1101AAE CABA, Argentina
예약을 안하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못 할 수가 있고,
예약을 하면, 스케줄에 제약이 생기는 예약의 아이러니ㅠㅠㅋ
스테이크와 와인을 곁들이며 시작된 수다가 한참 재미있어 지는 무렵,
다음 일정으로 탱고 공연이 예약되어있어서 자리를 마무리해야했다.
사실은 한참 전에 일어났어야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우버를 타고 가는 길에 마음이 초조했다. 전날 본 탱고 포르테뇨를 생각하고, 못 들어가거나 짧은 공연의 중요한 오프닝을 놓쳤으면 어쩌지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Bar Sur에 들어섰는데, 다행히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늦게까지 진행되어 오히려 더 있다 올걸 그랬나, 싶었다.
탱고 포르테뇨는 무대와 관객이 분리되어있고, 뮤지컬처럼 스토리가 있는 프로그램이였다면, Bar Sur는 커피숍, Bar 한 가운데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 춤을 추는 분위기였다. 연주자들의 연주와 노래가 구성되기도 하고, 남녀 댄서가 탱고를 추기도 하다가 관람객들을 일으켜 세워 간단한 동작을 교습하고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였다.
공연은 새벽 1시30분에 끝났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간이라 당황스럽긴했지만 다행히 우버가 쉽게 잡혀 숙소에 잘 들어왔다.
벌써 6개월이 지났고, 여행 뒤로 갈 수록 일기도 게으르게 썼던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구글을 찾아봤더니 나의 행적이 너무 자세하게 잘 기록되어있다 ㅎㅎ
친절한 편이고, 와이파이도 잘되고, 창가에 앉았고, 정말 신기하게도 또 민트색 그릇을 받아서 기분은 좋았지만
음식은 그저 그랬다.
페루에 관련 책 두 권을 가지고 갔는데, 그 중 쿠스코 성당과 관련한 설명이 있었다.
몇 개의 설명을 받아 적어 그 옆 성당 가서 하나하나 확인하며 구경하였다.
- 잉카 시대의 비라코차 신전의 토대에 세워짐
- 요새 사크사이와만에서 날라 온 돌로 외관을 지음
- 내부 제단에 은 300톤을 투입함
- 제단 맞은 편에 성가대석이 있음
- 가운데, 바로크식 지붕에 매달린 마리아 앙골라종은 남미에서 가장 큰 종임
- 유럽 화풍과 잉카문화가 합해진 메스티소 화가들의 그림이 있음
- Marcos Zapata 최후의 만찬에는 페루 음식인 쿠이가 그려져 있음
- 원주민 피부의 그리스도상이 있음
▼ 성당에서 나와서 찍은 광장 사진 (성당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ㅎ)
아침에 목베개에서 숨겨놓았던 200달러를 챙겨나왔는데 보이질 않았다.
이놈의 200달러.
광장 벤치에 앉아 한참을 찾다가 숙소에 돌아가서 또 한참을 찾았는데, 결국 들고나섰던 가방에 들어있었다 -__-
여행 가방과 침대까지 열심히 뒤진 뒤라 피곤이 몰려왔다.
아 모르겠다, 하며 2층 침대에 올라가 낮잠을 잤는데 4시간을 잤다.
점심으로 산드로 시장에서 닭국수와 츄로스를 먹으려고 했는데 5시가 다 되어 있었다.
산드로 시장
산드로 시장에서 닭국수를 찾지 못해서 과일 주스만 한 잔 했다.
옵션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다가 대충 찍어 먹었는데 맛있었다 ㅋ
시장 밖에서 공연을 하길래, 쥬스를 들고 나가 구경하려고 했는데 매장에서 계속 사용하는 플라스틱 잔에 줘서 당황했고
걸죽한 주스 때문에 금방 배가 불렀는데, 거의 다 마셔갈 때쯤 믹서기에 남은 음료를 리필해줘서 또 당황했다.
시장에서 시내 돌아오는 입구에 여러 사람에게 추천 받은 츄러스가게가 있어서 찾아갔다.
츄러스는 1솔인데, 크기가 엄청 컸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은만큼 인상적인 맛은 아니였지만, 느끼하지 않고 괜찮았다.
츄러스 가게 바로 맞은 편 샌프란시스코 성당에 잠시 들렀는데, 그 앞에서 바라보는 저녁 하늘이 멋있었다.
성당 근처에 대학교가 있는지 학생들이 근처에 무리무리 있어서 캠퍼스 분위기가 났다.
Morona
저녁은 Morona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맛있고 친절했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반 이상 남겼다 ㅠ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가서 인원 수의 3분의 2만큼만 음식을 주문하면 될 것 같다.
페루에는 팁 문화가 없다고 해서 팁을 안내고 있었는데 직원의 남다른, 그렇지만 뭔가 부자연스러운 친절에 눈치가 보였다. 다른 테이블에 혼자 온 듯한 서양 여자가 각각 2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팁을 두고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동양 또는 한국 욕먹고 다른 사람이 차별 받을까봐 처음으로 팁을 남기고 나왔다.
커피숍에서 커피까지 챙겨먹고 호스텔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며 일기를 썼다.
Cusquena Trigo Wheat Beer- 맥주를 달라하였더니 윗층에 올라가 시원한 것을 찾아다주고
사진을 찍으려고 알파카 인형을 꺼내 올려두었더니 귀엽다며 우쭈쭈하는 호스텔 직원 덕분에 평화로운 하루의 끝이 설레이는 즐거움으로 마무리되었다. (여자 직원임)
생색없는 배려를 할 수 있을까
팁 문화에서 생각이 확장된 것일까.
이 날 일기에도 기록했고, 친구들에게 공유하기도 한 것이 있다.
뉴욕에서 페루를 오는 비행기 안에서 꽃보다 청춘 영상을 봤다.
페루 여행을 같이 간 윤상을 나름대로 배려하였으나, 윤상에게 핀잔만 들은 이적이 말한다.
"사심 없이 배려를 해야 되는데 아직 저는 생색의 마음이 있는거에요."
이 것은 나다.
사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배려를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지만,
그 와중에 상대방이 알아주길, 딱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나도 배려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혹은 그걸 기대하기 때문에 배려라는 행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하이킥 박해미의 인터뷰에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있었다.
배려할 때는, 돌아올 것을 기대하기 보다 그 과정의 기쁨을 느껴야 된다고.
그런데 나에겐, 그 과정의 기쁨이, 상대에게 돌아올 감사와 감동과 더 큰 배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르겠다.